옛돌정원 야외 설치

옛돌정원 야외 설치

옛돌정원 야외 설치

  • 〈관계항 – 만남〉, 2025, 스테인리스 스틸, 자연석, 자갈

    〈관계항 – 만남〉, 2025, 스테인리스 스틸, 자연석, 자갈 © Lee Ufan, 사진: 김상태

  • 〈관계항 – 튕김〉, 2025, 스테인리스 스틸, 자연석, 자갈

    〈관계항 – 튕김〉, 2025, 스테인리스 스틸, 자연석, 자갈 © Lee Ufan, 사진: 김상태

‘희원’ 건너편의 호암미술관과 너른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얕은 구릉지 산책로인 ‘옛돌정원’에서는 철과 돌이라는 문명과 자연이 만나 이루어진 이우환 작가의 신작 3점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입구에 설치된 〈관계항-만남(Relatum-The Encounter)〉은 지름 5미터의 스테인리스 스틸 링 구조가 먼저 공개되며, 향후 링 양쪽을 마주 보는 두 개의 돌이 더해져 작품이 완성될 예정입니다. 관람객은 주변의 자연, 돌, 링을 통과하는 바람들이 만나고 부딪히며 만드는 울림을 통해 더 큰 공간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위쪽 산책로에는 곡선형 스테인레스 스틸과 두 개의 자연석이 역동적인 균형을 이루는 〈관계항-튕김(Relatum-Bursting)〉이 설치되었습니다. 작가가 1970년대에 흔들리는 얇은 철판으로 형태를 구상했던 것을 이번에 두꺼운 재료로 구현한 작품입니다. 흔들리지 않아도 흔들림이 느껴지는 긴장 관계 속에서 한 부분이 튕겨져 나간 듯한 형상을 보여줍니다.

〈관계항 – 하늘길〉2025, 스테인리스 스틸, 자연석

〈관계항 – 하늘길〉2025, 스테인리스 스틸, 자연석 © Lee Ufan, 사진: 김상태

호숫가에는 직선으로 뻗은 20미터의 슈퍼 미러 스테인리스 스틸 판과 돌로 이루어진 〈관계항-하늘길(Relatum-The Sky Road)〉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관람객은 거울처럼 반사되는 작품 표면에 비친 하늘과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마치 하늘 위를 걷는 듯한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옛돌정원’ 전경 2025

‘옛돌정원’ 전경 2025, 사진: 김상태, 이미지 제공: 호암미술관

‘옛돌정원’은 호수를 바라보는 경사진 구릉의 자연 지형을 최대한 살려, 관람자가 굴곡진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매 순간 새로운 풍광과 작품을 발견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시원하게 트인 호수 조망과 지형의 리듬, 이우환 작가의 작품과 주변 풍경이 상호 호응하여 특별한 감동을 선사하고 관람의 깊이를 확장할 것입니다.

〈실렌티움〉에 선 이우환 작가, 2025, 호암미술관

〈실렌티움〉에 선 이우환 작가, 2025, 호암미술관, 사진: 이재안

1936년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난 이우환은 한국의 전통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로, 학창시절 문학과 글쓰기에 깊이 몰두하였다. 1956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였으나 그 해 여름 일본으로 건너가 1958년부터 도쿄 니혼[日本]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이때 탐닉한 하이데거(Heidegger)의 존재론, 신체성에 기초한 메를로 퐁티(Merleau-Ponty)의 현상학,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의 장소론 등은 이후 작가의 미술활동에 중요한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그는 일본 ‘모노하’ 운동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다. 모노하는 돌, 흙, 나무 등 자연물을 순간적으로 배열해 세계의 열린 구조를 드러내는 운동으로, 서구의 오브제 미술과 달리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사물 그 자체의 존재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는 기술 중심의 서구 근대적 인식에 대한 비판과도 맞닿아 있었다. 이우환의 미술세계는 “존재, 무, 사이, 만남”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되며, 인간과 자연, 사물이 맺는 관계를 탐구한다.

〈관계항〉은 이러한 철학을 시각화한 대표작으로, 돌과 철판, 유리 같은 이질적인 재료를 결합해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드러냈다. 그는 인위적인 구성을 피하고, 인간과 사물이 서로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세계의 본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1973년 이후에는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의 회화 연작을 통해 시간성과 행위성을 탐구했다. 점과 선의 반복은 우주의 무한성과 존재의 순환을 암시하며, 작가 자신은 최소한의 개입자로서 이러한 질서를 화면 위에 드러냈다. 1980년대에는 〈바람으로부터〉 연작을 통해 붓의 움직임이 한층 자유로워졌고, 1990년대 〈조응〉 연작에서는 여백이 강조된 절제된 화면으로 돌아왔다. 점과 선이 서로 상호 조응하며 캔버스 전체에 리듬과 존재감을 형성하여, 조각 작업 〈관계항〉과 철학적으로 맞닿아 있다.

이우환은 1970년대 일본 모노하의 이론적인 리더이자 한국미술에 중요한 자극원이 되었으며, 아시아와 유럽 미술계에 충격을 주고 두 세계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탐구와 질문은 1990년대 이후 많은 평론과 논문 그리고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통해 계속해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